떨어진 신발끈이 여행 시작도 전에 개똥 철학 하나를 던져 준다.
"풉!"
DMC전철역을 콧전에 두고 신발이 떨어져 버렸다. 정확하게는 발등을 감싼 X자의 샌들끈 중 하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나머지 하나의 사선과 발목의 고정끈 하나만이 내 발을 지탱한다. 당황스럽기보단 우스웠다. 어쩌면 타이밍도 이리 절묘한지 먼길 떠나는 임을 붙잡기라도 하듯. 마침 비가 내려 우산을 펴드는 순간이다. 우산을 펴드는 시간만큼의 찰나적 순간이지만 완전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돌아갈까? 나아갈까?'
미국에서 돌아온지 24시간도 안 된 친구는 시차 적응 하느라 어젯 밤, 내가 들어온지도 모를만치 깊이 곯아 떨어졌고 혹시나 깨울라 방문을 닫아둔 채 거실에서 드라이를 하고 조용히 커피 한 잔만을 내려 마시고는 조심스레 현관을 빠져나왔었다. 문자나 카톡이라도 남길까 하다 혹시나 진동에 깰까, 이런 낭만 정도는 남기자 싶어 살금살금 메모 한 장 손으로 남겨 두고 열쇠 돌리는 소리도 조심스레 철제문을 잠근다.
내 모든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발끈은 다섯 발자국을 못 내딛고 나머지 하나가 떨어져 버렸다. 이래서야 더는 갈 수 없다. 가방 안에 여분으로 챙겨온 앞창 떨어진 운동화를 꺼내 신을까 잠깐을 망설인다. 그러나 비 때문에 금새 밑창이 젖어들 것이고 흙탕물에 젖은 양말이 그다지 좋은 기분으로 떠나는 것만은 아닌 나를 눅눅하고 냄새나게 만들 것이다. 돌아가야 했다.
이것이 불운의 시작일까? 누군가는 시작부터 이게 무슨 황당한 사건인가 싶겠지만 나로서는 외려 안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행여라도 9시 기차를 놓칠까 알람은 필수였지만 곤히 자는 친구에게 방해될까 그나마 휴대폰을 거실에 두었던 것이다.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눈을 막 뜬 시간이 채 여섯시가 안 된 시각, 내가 타야할 기차는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이었고 DMC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도 한번을 더 갈아타야 했으니 서울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멀었다. 게다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지만 한번도 이 코스로 용산역을 가 본적이 없어 탈 때마다 실수하는 난해한 공항철도가 나를 또 괴롭게 만들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리하여 밥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머리나 감고 바로 나가자는 생각에 8시에 맞춰둔 알람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일어나 버린 건 소풍가기 전 설레는 아이의 맘 같은 건 아니었다. 설레임이 아예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겠고 그에 앞서는 막막함과 먹먹함, 두려움, 막연한 기대 같은 것들. 요즘 내게 신발끈 떨어진 것 정도는 그다지 불운이나 불행 축에도 못 끼는 아주 작고 사소한, 아무 것도 아닌 피식거릴 수 있는 불편함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2시간 먼저 일어나 1시간을 더 누워있다 7시께야 망설이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한번 배낭을 꾸리고 1시간 10분이나 일찍 출발한 덕을 톡톡히 보게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신발은 떨어졌을 테지만 그것이 전철역 코 앞이 아닌 전철을 타고 가는 도중이나 용산역에 다 왔을 때였으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말이다. 다시 돌아가 친구의 신발로 갈아신고 다시 이 자리까지 오는데 소모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10분이나 더 될까? 하나의 끈에 지탱해 고집스레 더 먼 길을 가기 전에 떨어져 준 나머지 하나의 끈에 감사조차 할 지경이다.
사실 내게 모든 여행은 이런 떨어진 신발끈 같은 것이었다. 그 자리에 멈춰서서 나아갈지, 돌아갈지, 머무를지 고민하게 만드는. 당황스럽고 답답하게, 그리곤 그 해결책을 생각하게끔. 처음엔 화가 나면서 '왜 하필, 또 나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그래, 지금 여기라 다행이야'라 낙관하게 만드는.
발걸음도 가벼웁게 골목길을 다시 들어선다. 또 다시 조심스레 열쇠를 돌려 현관문을 열고는 친구가 집에서나 신고다니는 조리, 플립플랍이라 불리우는 엄지발가락을 끼워 신는 슬리퍼를 신어 본다. 역시나 작다. 친구는 235mm, 나는 245mm. 슬리퍼라 무시한 게 잘못이다. 운동화나, 샌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 무례하게 짝이 없게 신발장 문을 열어 본다. 앗, 빨간색 버켄스탁. 친구가 가진 유일한 슬리퍼로 추정된다. 꺼내어 신어본다 길이가 딱 맞진 않지만 슬리퍼라 약간 큰 걸 샀는지 얼추 맞는데다 내가 유난히 칼발이라 폭도 괜찮다. 가는 길에 어디 살만한 데라도 있으면 모르겠으나 일요일 오전에 문을 여는 상점이 있을리 만무하다.
'곱게 신어야지. 나중에 한켤레 사주기라도 해야겠다. 어흑. 미안하다 친구야. 하지만 너무 짧아 발바닥이 땅에 닿는 핑크색 플립플랍 신고 가긴 너무 힘들었어.......'
'곱게 신어야지. 나중에 한켤레 사주기라도 해야겠다. 어흑. 미안하다 친구야. 하지만 너무 짧아 발바닥이 땅에 닿는 핑크색 플립플랍 신고 가긴 너무 힘들었어.......'
이렇게 10여 분을 허비하고도 공항철도에서 탑승 방향을 잘못 잡아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 또 한 번 실패하고 긴긴 계단을 다시 올라 서울역 방면을 다시 찾아 내려간다. '망할. 왜 이 놈의 공항철도는 좌우 모두 같은 방향 열차들이 오는 거야?! 표지판도 개떡같아. 얼핏봐서는 두 방면 모두를 탈 수 있을 것처럼 해 놓고 말이지'. 아는 나도 매번 실수하는데 한국어 모르는 외국인들은 더 불편할거야. 암튼 빠른 건 좋지만 공항철도는 다소 어렵다 내게. 하긴 모든 일에 일장일단이 있겠지.
우여곡절 끝에 용산역 도착. 아침은 먹어야겠는데 문을 연 곳이라곤 패스트푸트와 도너츠라 불리는 설탕 덩어리를 파는 곳들 뿐. 입에 벌써 텁텁함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런 음식들이 땡기는데 안 먹는게 아니라 진정 맛 없어서 못 먹도록 정성스런 가정식으로 키워준 엄마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굶으면 굶었지 끼니 때우는 걸 똥 참는 것만큼 싫어하는 나로서는 음료수 하나 없이 그냥 기차에 올랐다. 무엇보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이 훌쩍 가버렸고 내 앞에는 남도 맛집들이 곧 펼쳐지지 않을텐가? 물론 이 상상은 불과 24시간도 안 되어 분노로 바뀔 뻔 하지만 말이다.
용산역이라서 그런가? 서울역에 비하면 훨씬 한산한 느낌이다. 기차에 오른 뒤의 느낌은 더하다. 반 이상이 비어 있다. 이 정도라면 경부선 평일보다도 적은 듯 하다. 조용해서 혼자 생각하고 책 읽기엔 더없이 좋을 환경이기도 하지. 이유는 모르겠다. 친구 책장에서 꺼내든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 친구나 나나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서로 책 선물이나 대여를 종종 하는 편인데 책장에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유명한 고전 추리소설이 꽂혀 있다는 게 내심 기뻤다. 며칠 간 추적거리는 비, 아니 여전히 내 떨어진 신발끈을 적시던 비와 홀로 떠나는 여행, 남도로의 초행길, 그리고 서스펜스. 뭔가 모르게 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다.
벌써 내릴 때가 되었다. 광주송정은 또 어디란 말인가? 내가 커피를 대놓고 마시는 까페의 바리스타이면서 트친인 전라도분이 광주역과는 다른 변두리임을 말해 주었다. 트위터란 얼마나 편리한가? 언젠가 포탈의 지식사전들을 앞지를지도 모른다. 이건 인공지능이니까.
아, 열린 기차문을 내려서는 순간 다가오는 열기란! 근 2주를 빗 속에 살았던 서울시민에게 남도의 햇살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반갑기 보단 어딘가 모르게 적응이 되질 않아 썬글라스부터 꺼내 쓴다. 초행자의 티를 몰래 감춘 채, 맘 놓고 여기저길 살펴보고 두리번거릴 수 있게 조금 흐렸으면 좋으련만.
아, 열린 기차문을 내려서는 순간 다가오는 열기란! 근 2주를 빗 속에 살았던 서울시민에게 남도의 햇살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반갑기 보단 어딘가 모르게 적응이 되질 않아 썬글라스부터 꺼내 쓴다. 초행자의 티를 몰래 감춘 채, 맘 놓고 여기저길 살펴보고 두리번거릴 수 있게 조금 흐렸으면 좋으련만.
어제 마신 맥주 너댓 잔이 못내 육신에 남아 있는지 미약한 두통을 느낀다. 육식동물의 체질과 체형을 타고난 나의 신체는 물에 빠진 고기와 국물을 원한다. 떡갈비가 유명하다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는데다 죽도록 먹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찾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이 땡볕에 여행의 시작부터 용을 쓰고 싶진 않았다. 발걸음이 닿는대로 걸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나는 항상 말도 안 되는 이런 직감을 따랐다. 모든 길은 통한다. 길을 잃는다는 건 참으로 말이 될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단지 산 속이라면 조난이 있을 뿐. 틀런 적이 왜 없으랴만 그래도 이렇듯 행동이 굳어진 건 성공한 적이 더 많을 따름이겠지.
광주송정역 건너편 골목에는 허름한 국밥집들이 몇 개 있다는 사실을 몇 안 되는 독자분들께 알려 드린다. 아울러 크게 맛도 없고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누구나 알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살짝 공개하자면 이렇게 기존 데이터 하나없이 식당을 들어갈 때는 몇 가지 눈치껏 살펴볼 것들이 있다. 먼저, 손님이 있나 없나? 얼마나 있나? 물론 식사 시간대인지 아닌지, 얼마나 그 시간대를 벗어나 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메뉴가 얼마나 중구난방인가? 돼지국밥집에 순대국밥과 수육을 파는 건 상관없지만 비빔밥을 판다면 그 집은 십중팔구 맛과는 거리가 멀다. 마지막으로 이건 복불복인데 대개 간판이 화려하고 수식어가 많으며 휘황찬란한 정도와 맛과는 반비례한다.
굳이 내가 먹은 남도의 첫 음식인 맛없던 순대국밥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쁜 말은 굳이 하지 않는 편이 유익할 때가 많다. 단지 앞다투어 길과 방법을 알려주시던 주인 내외분의 친절과 신기하게 갤탭을 만져보던 순박한 눈을 가진 이모들이 있어 풀린 속과 다음 발걸음을 쉽게 뗄 수 있었다는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싶다.
이 곳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길거리에 일반인들보다 지체장애인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았다는 것, 아무리 변두리라곤 하지만 광역시같지 않게 낙후된 느낌이었다는 것.틀리건 맞건 내게 자연스레 떠오른 건 격동의 7, 80년대가 아닐 수 없다. 대구에서 나고자란 나로서는 수없이 듣고 자랐으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전라도 사람들을 더 좋아하기 까지 하는 나에게는 없다고 여기며, 최소한 우리 세대 정도에선 지금쯤 거의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는 지역감정이라는 게 왜 생겼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경상도 쪽 왠만한 시, 특히 산업이 발달한 도시 정도만 되어도 여기보다 더 번화한 것 같다. 씁쓸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자로서 이 느긋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도시가 좋았다. 국밥집 주인내외 분은 화정역에 내려 택시를 타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으나 스스로 불편하길 원하는 여행자임을 자청한 나는 터미널까지는 터덜터덜 걸었다. 버스로 2-3코스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실제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라면 체감 거리는 실제보다 훨씬 늘어난다.
세상 모든 다음은 처음을 따라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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