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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사색의 방

남도방랑기(4) - 분노할 곳에 분노하지 못할 테면





쾌적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덕분에 챙겨온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re Were None)>를 거의 읽어 버렸다. 이 잘 짜여진 추리소설의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할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역시 고전, 대가의 작품답군'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들게 했다. 아니 '거의' 읽었다면서 어떻게 결말을 아냐고?

그렇다. 난 소설을 때론 이렇게 읽어버린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 1때 국어 교사이던 담임 선생님이 발단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첫 부분을 읽은 후 결말 알고 나서 중간을 읽는다는 얘길 들으며 속으로 '싸이코'라고 비웃은 후부터 나는 악착같이 처음부터 차곡차곡, 지금껏 해왔던 대로 또 앞으로 해 나갈 것처럼 그렇게 차근차근 책을 읽어 내려갔다. 어느 책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결말이 궁금해도 절대 뒷장은 들추지 않았다. 스스로가 정한 금기같은 억지였다. 

중학교 때 나는 이문열의 삼국지와 소담출판사에서 나오던 세계명작 문고본들에 흠뻑 빠져 살았었고 중간중간 필수도서이며 흥미를 자극하던 몇몇 한국 소설들을 읽었던 것 같다. 엄마가 읽던 신경자의 소설들도 훔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 맘에 야한 장면들이 인상깊던 그런 책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장면들의 묘사가 있던. 다른 책들도 있었으나 이상하게 신경자란 작가의 이름만 오래 남아 있다. 아마 허용된 다른 책들과는 달리 혹시나 내가 볼까 서랍에 숨겨둔 소설들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경자'라는 촌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어린 내 눈에 소설들의 내용이 꽤나 신랄하게 서글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찌되었던 삼국지나 그리스 신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따위는 그다지 결말이 궁금한 그런 책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어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강렬하게 결말이 궁금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이런 현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지금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었던 게 자명한 사실이고 내가 1달에 2권씩 책읽기를 10년 간 한다해도 절대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책의 양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책을 사준 건 엄마지만 정작 '제발 책 좀 그만 읽고 밖에나가 놀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마 꾸욱 참고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차례로 책을 읽어 나갔을 거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무렵인가, 그 정해진 순서의 법칙을 깨뜨리던 순간, 거기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악착같이 집착하던 순서라는 것에 별의미가 없다는 것. 스스로 정해놓은 금기란 단지 내 청소년기 시작의 반항심일 뿐이었다는 걸. 결말을 알고나도 충분히 중간 과정이 궁금해졌고 외려 결말을 읽고 나면 디테일이 더 궁금해지더라는 것. 결말의 다음이야기를 끊임없이 또 상상하게 되더라는 것. 끝이 진정 끝이 아니었음을.


친구에게 쪽지 한 장 남겨둔 채 싸 들고 온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을 반절 쯤 읽었을 때 '뭐야, 이거 결말 뻔 한 거 아냐? 아, 역시나 이제 이런 플롯은 재미가 없어. 남은건 극사실주의뿐인가?'라며 실망할 뻔 했다. 그러나 결말을 읽고 나는 그녀가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추앙될 만 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사건들의 결말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럼 인생이 재미없을까? 하지만 곧 내게 떠오른 생각이란, 아마 그건 생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그렇지 않을까? 

사무실에 계시던 중학교 주임선생님 인상의 맘씨 좋은 직원분이 잠시 후 9시쯤 후배가 올 거라고 같이 시내로 나가자신다. 남한테 병적으로 부탁 못 하는 내가 참 이럴 때는 너그러워진다. 아마 부탁 자체를 싫어한다기 보단 쓸데없이 얽히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닐까?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에겐 부탁도 하기 싫을 테니까. 배낭을 다시 꾸리고 밑창 떨어진 운동화를 꺼내 신어본다. 콘크리트 평지에선 괜찮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혹시 터미널 근처에 신발 수선하는 곳이 있는지 여쭈어 본다. 머지 않은 곳에 있다시며 친절히 알려 주신다. 말씀하신 후배분이 오실 때까지  박물관을 다시 한 번 들러 다산의 저서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참 많은 책을 썼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분야도 몹시 다양해 건축, 의학, 정치, 사회, 경제, 철학에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다. 다산은 항상 기록과 분류를 강조해 카드식 정리를 했다는데 일종의 브레인 스토밍식 가지치기가 연상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걸 항상 메모하고 정리했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메모법이 아닌가 한다. 막 자라나고 옮겨다니는 생각의 잔가지들은 항상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대화 도중에도 처음 시작했던 주제가 무엇이었나 되짚어 봐야 할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진행방식은 가끔 상대방마저 어리둥절하게 한다. 뭐 나 스스로는 가끔 불편하긴 하지만 싫어하진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관심사는 남들의 몇십배쯤 되니까.

"갯벌은 서해에만 있는지 알았더니 남해도 많군요."

창밖을 내다보며 운전하시는 후배분과 직원분께 감탄의 찬사를 날린다. 후배라고는 하나 우리 삼촌뻘쯤으로 사료된다. 

"제가 고향이 대구라 전라남도는 처음인데 너무 좋으네요. 훨씬 자연 친화적이고 여유로운 것 같습니다."

초행자의 진심을 담아,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조금의 과장을 섞어.

"나도 잘은 모르는데 남해 갯벌이 영양소가 풍부하다더라고. 아가씨도 꼭 전복 한 번 먹어 봐. 그나저나 이젠 어딜 가나 그래?"
"글쎄요, 저도 생각 중 입니다. 어제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당목이란 데를 알려주셨는데 여기 어떤가요? 청산도는 또 어떤지요? 많이 먼가요? 사실 목적지를 아직 따로 정하진 않았어요."
"아, 청산도 좋지. 꼭 한 번 가봐요. 거기가 무슨 아시아 최초 슬로우시티로 지정되었다는데 나도 가 봤더니 너무 좋더라고. 관광지라지만 아직 발전되지도 않았고 분명 아가씨 같은 여행자가 좋아할거야. 지리 해수욕장가서 소나무 해변도 좀 걸어보고 전복죽 한 그릇 딱 먹고 .. 그 뭐더라.. 이름이.. 칼바위던가.. 암튼 바위 올라가서 전망도 한번 둘러보고 이러면 최고지. 암암~ 그나저나 너무 아깝네. 아까 그 같이 묵던 학생들 버스가 완도가는 길이었는데.."

그래, 두번의 행운은 욕심일거야. 일어나지 않았을 행운에 대해선 미련을 버리자.

역시나 이번엔 청산도로 향해야 할 운명인가 싶다. 어제 터미널서 캡춰해온 버스 시간표를 보니 완도가는 버스는 그래도 1시간 정도 가격으로 탈 수 있을 듯 하여 일단 신발 밑창을 붙이러 간다.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아저씨가 열심히 낡은 샌들을 고치고 계신다.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길이 없어 먼저 신발 밑창을 보여드리고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둘러보니 먼저 들어와 있던 두 분 손님 모두가 벙어리다. 나는 왜 이런 걸 보면 광주항쟁부터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다들 다른 사건사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우리에게 편한 환경을 닦아주신 분들은 모두 참혹한 현실을 살다가고 약삭빠르게 현실에 편승하여 양심을 팔고 산 사람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2010-2011년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르며 인문학 열풍을 불러 일으킨 출판계에선 다소 기이한 해였으나 얼마나 대중들이 일반상식까지 외면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왜 이제서야 사람들은 '정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비로소 각자의 삶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암세포가 내 몸에 치명적인 작용을 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통증이 생기고 그때 병원을 가면 이미 늦은 게다. 오호 통재라, 어찌 
이 철학없는 사회의 시민들은 이제서야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지만 가장 늦은 때가 빠른 때라는 옛속담에서 희망을 찾아 본다. 

단돈 2천원에 본드로 밑창 살짝 붙였을 뿐인데 뭔가 새것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게다가 이 운동화는 벌써 8년 전에 산 거라 아직도 신고 있는 내 자신을 기특하게 쓰다듬거려 주고 싶기라도 한 심정이다. 원체 운동화를 잘 안 신기도 하고 직장생활하면서부터는 더 신을 일이 없긴 했지만 예쁜 게 있다고 덥썩 사버리거나 조금 낡았다고 소비의 정당성을 찾지 않았던 스스로의 충동 억제성에 관한 보상이랄까. 매체가 조장하는소비의 매커니즘을 조금만 이해하면 세상 여자들의 충동구매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특히 명품구매욕이란 자존감 없는 여자들의 포장지 자아찾기 아니던가. 성형수술이 가면 자아찾기 듯이. 

어제 택시기사에게 추천받은 '화경식당'에 정식을 먹으러 갔더니 아직 11시가 안 된 시간이라 밥을 줄 수 없단다. 그러면서 옆집을 가 보란다. 뭔가 예감이 살짝 좋지 않았지만 일부러 연수원 아침밥까지 포기하고 나온터라 배가 너무나 고프다. 난 삼시 세끼 중 아침을 가장 많이, 그리고 맛있게 먹고 심지어 삼겹살이나 등심까지 구워 먹고 출근하는 사람으로서 추천식당보단 살짝 맛은 없겠지만 그래도 먹을 만은 할 거야라는 기대를 안고 정식을 주문한다.

아뿔싸!
나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좀처럼 밥을 남길 줄 모르는 내가 세 숟갈 뜨고 숟가락을 놓다니. 터미널에서 영량생가 방향 왼쪽에 있는 대로변 빨간 기둥이 틀로 된 식당은 절대 가지 말라고 미리 말씀 드린다. 내가 남겼다면 이건 정말 치명적인 거다. 난 비교적 맛에 관대하니까. 관대하다는 건 칭찬을 잘 하진 않지만 욕도 잘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 사이, 삼성전자제품을 운반하다 트럭을 잠시 주차해 둔 채 급히 먹으려는지 옆 테이블에 혼자와 앉은 청년이 안 스럽게 처다 본다. 

'제발 눈이 마주쳐 줘. 맛 없다고 알려 주게.'

수줍은 시골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폰만 만지작 거리다 결국 정식을 시킨다. 물 한 잔 으로 버린 입맛을 다시며 조용히 '저기요'라고 부른 후 목소리는 내지 않고 손가락 두개를 겹쳐 X자를 해 보이며 정말 맛없다는 입모양을 보여준다. 역시나 숫기없는 청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는 없나보다. 괜히 하루종일 빡세게 일할 것처럼 보이는 청년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오지랖을 넓혀 보았으나 만회의 기회는 지났고 청년은 곧 버리고 싶은 밥상을 받아들 것이다. '좋은 것은 공유하자'는 선택의 순간, 내 결정 원칙 중 하나에 따라 낯 모르는 청년에게 애써 말까지 붙여 보았으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결과지만 말하지 못한 과정의 후회보단 나으리라 위안하며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더 이상 앉아 있기도 싫은 식당을 탈출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버스를 타니 금새 완도에 도착한다. 선착장까지는 택시로 기본요금이라니 다시 한번 택시 기사 아저씨의 힘을 빌어보기로 한다. 선착장 바로 왼편의 사오정이라는 곳을 소개시켜 주셨는데 여긴 그냥 억지스레 한 공기를 다 비울 정도. 그래도 배는 더 이상 고프지 않았다. 이렇게 만으로 하루하고도 꼬박 반이 지나는 동안 남도의 맛은 나를 실망시키기만 했다. 슬슬 슬픈 짜증이 밀려든다. 왜 남들에게 다 맛의 고장으로 알려진 남도를 제게 이런 아픈 기억들로 처덕처덕 발라주시나이까?

이 느린 도시에서는 다들 여유롭다. 매표구는 비어있고 2시반 배는 1시반이 넘어서야 매표를 시작한다니 선착장에 있는 관광안내코너를 비롯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드디어 매표가 시작되고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순박한 언니가 표를 끊어주며 묻는다.

"한 분 이세요?"
"네."
"여자 혼자요? 아유, 안 위험해요?"
"서울이 제일 위험해요."

오늘 내가 제일 많이 받을 질문이 아닐까 싶다. 연수원의 직원 분에게도, 택시 아저씨들에게도, 지나는 길 아줌마와 아저씨들에게도. 나는 이 질문이 그토록 두려워 대한민국을 혼자 떠돌지 못했나 싶다. 기를 쓰고 동남아나 일본이라도 갔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은 두번 가고 다신 가지 않기로 했다.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는 나라. 덕분에 방콕은 대여섯 번도 넘게 다닌 것 같다. 들락날락 거린 것 합치면 두자릿수쯤 되지 않을까. 철저히 타인이 되기에 한국은 너무 좁고 일본은 우리와 너무 비슷했다. 내가 여행을 원할 땐 대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을 원한다.

덧붙이자면 만나서 인사하고 이름부터 묻는 외국과는 달리, 이 곳, 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의 개인은 호칭으로 치환된다. 나는 그 고마운 박물관 직원분도, 연수원 직원분도, 나를 태워준 후배분도, 그 누구의 이름도 모른다. 내가 항상 써 먹는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 주어야 비로소 꽃이 될 터인데 왜 우린 항상 호칭 속에 아이덴티티를 묻어 버리는가? 심지어 이렇게 나이 차이라도 많을 경우엔 예의없는 행위가 되기까지 할 터였다. 각 개체가 아닌 집단 속에만 존재하는 아이덴티티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한국의 집단무의식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 속해 있을 땐 나 역시도 그들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나의 의식을 표출해서는 안 된다.

"Hello. Nice to meet you. Just call me,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수진이라고 불러주세요."

라는 인사가 활성화되지 않는 한 타인의 시선 속에 자유롭지 못하고 뒷담화에 능한 그들, 아니 우리의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철에서 화장하는 여자가 첫 데이트나 중요한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 급히 나온 사정일지 그대가 아는가? 신발 꺽어 신은 남자가 발가락 잘려나간 수술을 받았는지 그대가 아는가? 괜히 자신만의 기준으로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타인 신경쓰지 말자."라는 나의 트위팅이 100회 넘게 RT되었을 때는 그만큼 이걸 열망하는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는 증거라 희망을 찾고 싶다.

사실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계기 역시 예전에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건 매너가 없는 것. 화장실에서 해야하지 않는가?'라는 말과 글을 심심찮게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화장하는 여자들에게 고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저런 법칙은 누가 정했는가? 물론 공공장소보다는 안 보이는 곳에서 하는 것이 훨씬 에티켓 있는 행동이겠지만 저런 행위를 해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왜 없겠는가? 미디어와 칼럼에서 떠드는 사람들 역시 그런 의미로 쓰지 않았겠는가? 설마 너네들 절대 하지 말란 뜻으로 쓴 건 아니겠지? 그런데 어느 새 금새 담론에 휩쓸리는 한국 남녀들은 모든 것에 자신들의 잣대를 가지고 상대를 재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나도 친구가 알려줘서 잠깐 재미있게 읽었던 모 연애 블로그가 그 극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소개팅과 연애담을 공유하고 더 나은 연애를 위한 사연들로 운영되는 그 블로그는 각자의  판단기준으로 자기 입장에서 얘기하는 일방 시선의 병폐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사연을 보낸 이는 나름 자신은 관대했다고 평가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분명 다른 얘기가 나올테지. 게다가 싫거나 아니면 그 당시 말을 하지 꼭 말 안하고 속으로 꾸욱 참고 있다가 이렇게 사연에다 대고 시간이 지나서야 불만을 토로하며 상대를 까고 스스로를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특유의 겉치레는 한심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아직 주제파악 못 하고 항상 조건 따지고 이상 따지는 남녀들은 '내 소개팅, 연애 상대들이 저랬겠구나' 하고 좀 읽어볼 필요는 있을지 모른다만.

하이힐에 발뒷꿈치가 까져서 피가 나고 쓰려서 걸을 수가 없는데도 구두 꺽어신은 여자를 욕할텐가? 아침에 부리나케 우는 아이 달래 유아원에 데려다 놓고 썬크림도 바를 시간 없이 부랴부랴 출근하는 그녀의 사정을 당신이 아는가? 그러면서 당신은 화장 안 한 여직원을 예의없다 욕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의 사정을 모른다. 그러니까 네 기준에서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떠들지 말라. 최소한 내 앞에서 떠벌리는 편협한 당신을 나는 마음 속에서 조용히 제명을 시킬테니. 전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를 보고 욕할 시간에 한진중공업의 썩은 행태와 정권의 부정부패에 분노하라. 

당신, 분노할 곳에 분노하지 못할 테면 잠자코 가만히 있기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