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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사색의 방

남도방랑기(3) - 끝이 좋으면 다 좋아

다산초당 오르는 뿌리길

 

혼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둘이서도 행복할 수 없다. 굳이 거창한 설명은 때려 치우자. 맨손으로 달걀치듯 탁 깨놓고 말해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종자가 무슨 남까지 거두겠단 욕심인가? 아 글쎄, 내가 부족하니 둘이서 노력하겠다고? 그럴 깜냥이라면 겸손하게 상대를 만날 것이지 뭘 그리 학벌에 직업 따지고, 월수입에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부모 잘 사나 못 사나까지 따져 보느냐 그 말이다. 게다가 착한 얼굴에 몸매라니. 이 무슨 껍데기를 인격화 시키는 망발인가? 남자건 여자건, 애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홀라당 벗겨놓고 개인기나 눈요깃거리로 몸을 상품화 하여 보여주는 요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법 아닌가 말이다. 좌우당간 당신이 이 모든 것에 짐 캐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다지 히트치지 못한 영화 예스맨 마냥 'Yes! Yes! Yes!'를 외칠만큼 완벽한가? 그렇지도 않은 채 나보다 더 나은 상대만을 선택하겠다는 건 대체 무슨 놀부 심보인가? 이기적 유전자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상대방 입장에서 왜 모든 것이 자기보다 못한 당신을 택해야 하지? 그에게는 더 나은 상대를 택할 권리가 없는가?

바야흐로 때는 한 달여 전, 간만에 친하게 지내던 고향 친구 셋이 모였다. 먹고 살기 바쁘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보니 얼굴 맞대고 얘기하는 건 일본 대지진 이후로 석달여 만인가 싶다. 마침 멀리 사는 친구 하나가 회사 교육이 있다고 서울에 왔다. 셋의 공통점이라면 다들 여동생이 먼저 짝을 이뤄 애까지 낳았음에도 우린 여전히 나홀로 독야청청 모드를 즐기고 있다는 것. 자의든 타의특히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둘의 엄마들은 맞선보라며 성화고 A는 부모님과 동거 중인데다 원래가 다소 피동적 성향이 있어 간간히 보고 있고 B는 독립해 사는데다 조곤조곤 할말 하는 성격이라 가뭄에 콩나듯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나 붙잡혀 보고 오는 정도랄까?

어쨌거나 한참 선 본 얘길 하다 B의 결론.

"야야, 우리 엄만 사장 아들이면 다 오우케이야. 아니 최소한 남자가 나보다 후진 학교를 나온 건 좀 너무 하지 않냐?"

한숨을 푹 쉬며 덧붙이는 A.

"에혀 ~ 사장 아들이면 집에 돈이라도 많을 거 아냐? 울 엄만 공무원이면 무조건 덥썩 물고 온다. 나보다 월급 작은 남잘 내가 먹여 살려야 되냐? 엉엉."

이때, 테이블 쾅! 치며 목소리를 깔고있는 나.

"나름 내가 아끼는 개념녀들인데 너네들조차 이러고 있냐? 생각을 좀 해 봐라. 너네보다 학벌 좋고 돈 잘 버는데다 성격 좋은 미남자들이 왜 우릴 찾냐? 좀 덜 똑똑해도 훨씬 더 어리고 이쁜데다 아직 뭘 몰라 말까지 잘 듣는 애들을 찾겠지.  남자들 착한 여자 어쩌고 해도 그거 그냥 다 말 잘 듣는 '아내감' 찾는 거지 진짜 성격 좋고 말 통하는 여자 찾는 줄 아냐? 그리고 남자들은 걍 이쁜 여자가 답이야. 착하긴 뭘 착해. 이쁜 애들이 똑똑하고 착하기까지 한 거지. 남자란 자고로 못 생긴 뇬들한텐 눈길조차 안 주는 동물들이여."

(실제로는 좀 더 과격했으나 한 번 정화하여 씀 -_-)
분위기는 다소 숙연해지고.....................
말없이 다들 막걸리잔만 벌컥벌컥~

그러나 그녀들은 나름 내 말귀를 알아 먹는 개념녀들이기에 정신이 번쩍들어 다소 반성을 하는 듯 하다. 솔직히 이 정도 친구들이니 나도 이렇게 막말을 늘어놓지 보통 친구들한텐 걍 입다물고 속으로나 '정신 좀 차려라. 쯧쯧. 이러니 아직 그러구 살지.' 이러고 만다. 자기 입으로 쿨한 척, 개념있는 척 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여전히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정곡으로 찔러주면 다들 발끈하거나 아니라고 변명하기 급급하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마냥.

뭐 사실 남자들도 다를 것 하나 없다만 그건 그 쪽에서 반성할 문제고 여자인 내 입장에서 줄줄이 비엔나로 늘어놓기 시작하면 비난이 되어버리니 난 그냥 내가 속한 집단의 입장에서 먼저 자성하련다. 홀로 행복한 나 조차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자조섞인 물음에는 자신있게 예스라 답할 수 없으니 나는 지금 여기 이 곳에 홀로 서 있다.

6시에 문을 닫는다는 다산 유물관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선다. 시골 마을은 버스가 일찍 끊기기에 일단 버스 시간과 정류소부터 알아 본다. 더불어 초당 입구의 다소 비싼 가족 단위에나 어울릴 법한 다소 비싼 민박 아닌 또 다른 숙박시설이 있는지를 혹시나 하는 맘에 슬몃 여쭈어 본다. 작은 방 5만, 큰 방 7만이면 사실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여행자에게는 더 아끼고 발품을 팔 의무가 있다. 최소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항상 더 나은 결과가 나왔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여긴 뭔가 하고 오는 길에 둘러본 뒷건물이 NGO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아직 부탁도 전인데 친절한 데스크 직원분이 손수 휴대폰으로 숙소가 남았는지까지 물어봐 주신다. 게다가 일박에 18000이라는 거저 먹는 가격이라니. 이건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저렴한 금액인데다 원하는 산속의 숙소라 더 없이 좋다. 여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터미널 근처의 허름한 여인숙에 여장을 풀었을 테지.

아,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아주머니께서 초치는 말씀을 하신다. 여자 혼자라니, 연수원이라 단체 아님 안 받아 줄거라고. 하지만 이 때 내 맘에는 '사람이 하는 일에 안 되는 게 어딨냐?'의 각오. 살아보니 정말 이렇더라.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달렸을 뿐. 그 순간만은 내 눈에 더 없는 선녀의 모습으로 보이던 전화하는 직원분이 '방 있다'며 통화 중 눈치를 주시더니 전화를 끊으시곤 올라가 보라신다. 

야호!
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일단 배가 너무 고픈데다 고요한 박물관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아 감사의 인사를 몇 번 이나 드리고는 건물로 올라간다. 복도를 뛰어다니던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던 남학생들이 나를 흘끔거리긴 했으나 금새 하던 놀이들에 집중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이유없이 좋아하는 편이고 그들을 대하는데도 능숙한 편이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준다. 저들이 저 나이 땐 항상 저렇게 뛰어 놀았으면 한다.

사무실에 가니 어느 학교 주임 선생님쯤 될 법한 연세의 다소 마른 인상좋은 아저씨 한 분이 반가이 맞아 주신다. 계산도 아침에 해도 되고 밥은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이니 식당가서 먹어도 된단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 열쇠를 받아 방문을 여니 ................................여기가 지상낙원일세! 나란히 놓인 침대 두 개가 나에겐 많이 과분했지만 에어컨에 티비까지 있고 테이블에 발코니까지 딸린 작은 크기의 콘도 호텔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난 역시 행운아야!"라며 스스로를 기특해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곤 끈적거리는 몸부터 씻기로 한다. 이틀 째 같은 옷인데다 하루 종일 땀 뻘뻘 흘리며 걸어다녔지, 다산초당길은 어찌나 습한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달까? 덕분에 그 독하다는 산모기에 어찌나 많이 물렸는지 다리 여기저기가 벌겋게 퉁퉁 부었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조금은 아쉬웠으나 이 정도면 견딜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겐 조금의 불편함들을 덮어버릴 만큼 충분히 힘들 기억과 사서 고생한 여행들이 너무도 많아 난 항상 그때의 추억들을 야금야금 꺼내 먹는다.

'빠이(태국)와 인도의 밤들에 물렸던 모기들에 비하면 이런 것 쯤은 애교지.'

차갑고 뽀송거리는 몸으로 식당에 내려가니 아이들 대다수는 식사를 마쳐가고 벌써 반은 자리를 뜬 것 같다. 배식대에는 정갈한 산나물과 고춧가루 넣지 않은 콩나물 무침, 김치, 고등어 조림, 맑은 국을 포함해 5가지 정도의 찬이 차려져 있었다. 난 욕심껏 접시에 마구 퍼 담았고 당연스레 다 먹었다. 심지어 더 먹으려고 했지만 밥은 떨어진 후였다. 누군가 나에게 엥겔 지수만 좀 낮추면 돈이 절약될 거라던데 어차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먹고 웃는데서 복이 온다는 나의 지론은 변함 없다. 이 두가지 어떻게 하는지만 봐도 상대의 성격이 나온다.

없는 밥에 배가 아직 덜부른 나는 배식대를 기웃더리다 다소 머쓱해져 '뭐 이정도면 딱 좋을 정도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후 밖으로 나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한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7시나 되었지만 산 속의 밤 조차 여전히 환하다.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첫째 날의 기억은 이쯤에서 접어두도록 하자. 그 때 나의 맘은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못 하였으나 현재 여행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나의 맘은 벌써 청산도의 길들로 달려가고 있다. 게다가 여행길에 불안하다면 가장 불안했을 첫날의 숙소가 너무나도 멋지게 해결되는 바람에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희곡 All's well that ends well(끝이 좋으면 다 좋아) 에서 헬레나가 결국 버트람을 쟁취하며 끝났지만 '참으로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저 여자는 더없이 집착적이군' 이라 생각한 나로서는 결과에 묻히는 과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끝이 좋으면 다 좋지만 헬레나가 그의 인정을 받은 것이 과연 끝인가? 실제 세상이라면 그건 한 순간의 좋은 때일 뿐. 나도 모르게 끝이 좋은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끝이 좋다는 건 그것이 좋건 나쁘건 과정없이 올 수 없다.
 
세상에 나쁜 과정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