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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사색의 방

남도방랑기(2)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세상 모든 다음은 처음을 따라갈 수 없다. '초심으로', '초심을 잃지 말자' 따위의 다짐과 각오를 세상 사람들은 참 많이들 한다. 내가 쓴 문장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다른 얘기다. 두 번째, 세 번째를 하다보면 어느 새 나는 훨씬 익숙하고 능숙한 사람이 되어 있다. 물론 익숙함이란 때로 크나큰 독이 되기도 하며 권태라는 수렁에 우릴 빠뜨리기도 한다. 그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내가 통달한 사람이라면 여기 앉아 이런 문장 따위를 쓰거나 생각하고 있지도 않겠지?

초심이라는 것, 처음의 마음이라는 것, 그것을 다시 되찾기란 실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벌써 경험해 버린 걸 경험하지 않았던, 아무 것도 모르는 그때로 돌리기란 인간의 야욕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때가 오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대신 다른 초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사실 우리가 '초심'을 언급하는 가장 큰 두가지 인생의 축은 일과 사랑이 아닌가? 오래된 연인에게,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에, 우리는 가장 큰 실망을 느끼고 좌절하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나의 이십대는 3개월 연애와 2년짜리 이직으로 점철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변화에 쏟는 에너지와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변화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면 그 에너지에 깔려죽고 말 것 같은 사람이었다 - 지금도 그렇지 않은 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초심으로 돌아가거나 초심의 지속이 아닌 초심을 새로 보는 눈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지겨워진 사물을 버리고 새 것을 사는 것보다 그것을 개조하거나 새롭게 보는 힘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복된 실망과 예상을 빗나가는 사랑의 행보나 기대했던 직업의 어두운 면, 어쩌면 그건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었을 게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만한 세월을 살아온 것 같다. 양면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의심해 봐야 한다. 절대적인 어떤 것이란 세상에 없다. 이 사실 하나만이 세상에 절대적일 것이다.
 
어쩌면 익숙함과 능숙함은 굉장히 편안한 키워드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안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자그마한 사건들을 일으키겠지만. 아마도 내가 다음에 전라남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보다 훨씬 느긋하고 여유롭겠지? 하지만 나는 이번에 보지 못한 다른 면들을 보게 되고 알게 될테지.

3개의 버스정류량을 걸어온 내게 광주의 버스터미널이 선물한 가장 큰 안락함은 그늘이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언급 하겠지만 나의 여정은 끝까지 그늘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햇볕가릴 그늘 하나에 나는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모른다. 시원한 그늘에 들어서 하염없이 시간표를 올려다 보고 있자니 어디로 가야할지 쉽게 감이 잡히질 않는다. 구글맵을 꺼내 광주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본래의 막연한 목적지였던 청산도, 청산도 배를 탈 수 있는 완도의 위치를 다시 점검한 뒤 다시 한 번 시간표의 배차간격과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가늠한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3시간 남짓 걸렸으니 여기서 완도까지 다시 한 번 3시간을 더 간다는 건 나처럼 게으른 여행자에겐 무리였다. 길바닥에 다시 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들을 뿌려대는 여행객을 가장한 관광객들을 나는 얼마나 비웃었던가? 창밖의 풍경으로,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구름으로 그 도시를 지나쳤다는 위로를 담는 여행객들에게 속으로 얼마나 조소를 퍼부었던가? 관광객과 여행자를 구분하는 가장 큰 잣대는 '인상과 추억(특히 사람에 대한)'이다. 일단 관광객엔 손님 객(客)자를 쓰고 여행자에는 사람 자(子)자를 쓰지 않는가 말이다. 

혹여 장기여행길에서 누군가와 합류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이곳저곳을 하루 이틀 머물고옮겨 다니거나 대표 도시들만 긴거리를 이동해서 돌아다니는 여행객적 경로를 지향한다면 나는 지체없이 갈림길에서 헤어진다. 여행을 특별히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짧은 기간 에 많은 곳을 다니는 건 통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인생이 여행이지 않은가? 나의 생이 여행이라면 나는 그늘에 쉬며 지나가는 나그네와 의미없는 날씨 얘기도 나누고 그 곳에 오래 산 연륜있는 노인과 삶의 자락 한 토막 나누는 여행자이고 싶다.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처다보기도 하고 행상에게 음료수 한잔 사 먹기도 하며 빨래터 나온 아낙에게 이파리 띄운 물 한잔 얻어 먹는,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고 싶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하나 내려다 볼 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관광객이 되고 싶지는 않다.

15분 후면 버스를 탈 수 있고 고작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트위터의 누군가가 절경과 음식이 모두 뛰어나다고 했던 강진행 표를 끊었다. 결정적으로 완도행 버스가 지나쳐 가는 곳이라 다음 여정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맛없는 순대국에 헛배가 부른 나는 무엇보다 맛있는 저녁이 그리웠다. 

아, 이건 분명 강진의 냄새다. 그리고 여긴 내가 좋아하는 시골의 정류장이다. 나는 시골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아마도 그 낙낙한 여유와 고즈넉한 분위기, 과장되지 않은 인테리어(열악한 조명과 군더더기 없는 바르다 만 시멘트벽 같은 것들을 감히 인테리어라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문일 거다. 단순히 숨 막힌 도시의 반대급부일 수도 있다.

더운 여름에 지친 기사 아저씨들과 평균 연령 족히 예순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승객들이 대합실에 앉아 티비를 쳐다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온 듯한 티가 풀풀 나는 젊은 여자를 쳐다보는 의문의 시선들이 느껴졌으나 나는 비겁하게도 썬글라스로 내 눈빛을 가린 채 주변을 관찰하는데 몹시 능숙하다. 때로 흐리고 비오느 날씨에도 다소 연한 색의 썬글라스를 쓰는 이유다.

"야야, 그만 좀 쳐다봐라!!!"

나는 누군가를 빤히 처다보는 행위를 즐겨하는데 그것이 내 맞은편 상대가 아닌 전혀 관계없는 타인일 경우, 나보다 함께 있는 누군가가 먼저 불편해 한다. 그럴 때 유일하게 내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변명은 하나다.

"왜? 몰래 흘끔거리는 것보단 낫잖아?"

이런 가당찮은 자기합리화로 나는 주의를 끄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장소와 상대에 관계없이 물끄러미 뒤꼭지로 시선을 쫓는다. 예쁘고 몸매좋은 여자일 때도 있고 센스있는 패션 여성일 때도 있고 탄탄한 바디 비율을 자랑하는 멋진 남성일 때도 있고 동성애로 보이는 커플일 때도 있다. 눈빛이 매력있는 사람일 때도 있고, 까페나 술집에서 이별 중인 연인이거나 소개팅 중인 남녀, 불륜인지 모녀인지 애매한 지긋한 노신사와 어린 여자일 때도 있다. 매번 다른 경우라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지만 어쨌거나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을 처다보는 버릇을 없애거나 바꿀 수는 없을 듯 하다.

이것도 관음증의 일종일까? 나는 훔쳐보지 않기 위해 빤히 처다보지만 누군가 이를 두고 이렇게 생각한다 해도 할말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실존하는 사람과 그들의 지금 이 순간, 혹은 인생을 상상한다. 내가 당신을 빤히 처다보지 않는다면 나는 이미 당신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할 조금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같은 논리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느 정류장이든 터미널 밖에는 항상 택시들이 대기해 있다. 목적지가 없는 내게는 무용지물인 교통수단이지만 초행지에서 맛집을 찾기에 택시기사 아저씨들만큼 여쭙기 좋은 분들도 없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게 필요한 건 오히려 버스다. 버스타고 해안선을 따라가다 맘 내키는 곳에 내리는 것 외에 내가 할 건 딱히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두리번 거려도 강진 시내와 근교 부락을 돌아다니는 시골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신호등이 필요없어 보이는 차도를 건너는 학생들을 붙잡고 물었더니 터미널 안으로 가라는 것이다. 누가봐도 내가 여행자처럼 보이나 싶어 '아니, 시외버스 말고 시내버스요. 강진 시내를 돌아다니는 마을버스 같은 거요!'라고 다시 한 번 강조를 했더니 그런 버스가 터미널 안에 같이 있단다. 괜히 오해한 내가 미안해서 고맙다고 환하게 인사하고는 터미널로 다시 들어선다. 아니나 다를까, 농촌버스 승강장이 내가 내린 버스 옆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내리면서 보았던 쉬고 계신 기사님들은 시외버스보다는 농촌버스를 운행하시는 기사님들이었던 것이다. 슬그머니 다가가 표지판을 보는 척 하다 항구 이름 하나를 대고 거기 가는 버스 없냐고 여쭈어 본다.

"아, 아가씨, 그 차 방금 떠났어. 저기 가는 저 차 타야 디야~"
"헉. 그럼 다음 차는 언젠가요?"
"뭐 한 시간쯤 더 있어야 할까? 4시차 타야겄네. 그나저나 어디갈라고? 여행하는 겨?"
"네. 호호."
"혼자?"
"네."
"아이구, 이쁜 처자가 애인도 없는가벼~ 왜 혼자 다니구 그려?"
"저 원래 맨날 혼자 다녀요. 같이 다님 귀찮아요~"
"희한한 아가씨네~"
"음...좀 조용하고 한적하고 관광객 별로 없으면서 음식 맛있는 바닷가 좀 없을까요? 저 추천 좀 해 주세요. 전라남도 처음 와 봐요~헤헤~"

아저씨 두세명이 한참을 여기저기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하시더니 당목으로 가라신다. 아까 떠난 그 버스를 타면 역시나 갈 수 있다며 4시 10분 차를 타라신다. 4시까지 오라는 신신당부를 받고 목을 좀 축일까 싶어 다시 터미널 밖으로 나간다. 겨우 하나 있는 커피점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건지 요즘 영업을 하지 않는 건지 불이 꺼져 있고, 맞은 편에 보이는 생과일 전문점 캔*아는 영 내키지가 않는다. 그 발랄한 분위기의 꽃장식과 흔들그네, 학생들의 수다 속에 어쩐지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수많은 선택의 폭이 있어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가지 않는 파리바**에 들어선다. 이 촌동네에도 우리나라 제과 프랜차이즈의 양대산맥인 뚜**르와 파***뜨는 건재하다. 역시나 씁쓸하다.

들어서고는 더 이상의 카페인은 안 되겠다 싶어 토마토쥬스를 주문하곤 스마트폰으로 강진을 검색한다. 이젠 정말 가이드북이 필요없는 세상이 왔다. 그다지 신나는 일은 아니다. 실수할 수 있고 잘못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줄었다는 뜻이며 새 길을 찾아보거나 왔던 길을 돌아나와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볼 겨를을 빼앗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길에 서서 방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침반을 돌려보다 행인 하나 붙잡고 물어볼 기회와 덤으로 얻어지기도 하는, 매체와 안내책자엔 나오지 않는, 더 유용한 정보들을 원천봉쇄 당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자라는 성(姓)을 가지고 여행하는데 있어 장단점을 따져보자면 왜 혼자 다니냐는 질문과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냐는 걱정에 답하는 수고로움 만큼 의심과 경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싹싹한 인사와 정중하고 예의바른 부탁으로 배낭을 맡겨놓기란 참으로 유용한 기법이다. 더구나 홀딱 벗고 그늘로만 걸어도 땀에 흥건히 젖을 듯한 더위에 짐이 아무리 적다한들, 보온 기능 확실한 배낭은 정말 고역이다. 한잔의 쥬스와 에어컨 바람으로 원기를 회복한 나는 영랑생가를 들르기로 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다 아직 버스시간까지는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무슨무슨 생가를 참으로 좋아한다. 위대한 그 분들을 뵐 수는 없지만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집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이고 숙연해지는가? 집이란 또 다른 그 사람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집에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한정적인가? 집을 공개하고 초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누군가를 경계하는 딱 그만큼 우리는 그를 집에 들여놓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집에 들여놓는 사람이란 얼마나 매력이 없는가?  방금 만난 이성에게 '비디오방에 가자'고 날리는 뻐꾸기만큼 '우리집에 가자'고 말하는 사람도 싫다. 아무나 집에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와도 하룻밤을 보내지만 아무와도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런 일시적인 욕망의 하룻밤을 모두 경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산초당과 더불어 강진의 대표 유적지답게 영랑생가는 참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너무 잘 정돈되어 이토록 반질반질한 잔디와 깨끗한 앞마당만 보면 그때 그 시절에도 이 집이 여기 이 자리에 있었을까 싶은 의문마저 든다. 뒷산의 쭉쭉 뻗은 죽림만이 무언가 모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얼마 전 방문한 만해 한용운 생가에서도 빽빽하게 들어선 뒷산의 꿋꿋한 숲들에 크게 감명받은 기억이 난다. 이름난 분들의 생가에 가면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절개와 기상을 상징하던 솔숲과 대숲이 어김없이 들어서 보는 눈과 마음을 모두 청명하게 한다. 잠시 후 방문하게 될 다산초당 역시 송풍(松風)암이란 별칭이 있을만큼 소나무가 빽빽하다.

들어온 길과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리저리 둘러본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지 않기로는 아마 내가 일등 아닐까 싶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어쩔 수 없이 모험과 안전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할 수 밖에 없고 그만큼 나의 호기심은 생명을 단축한다. 느긋한 행보에 조바심을 내야하고 찾던 곳이, 예정한 길이 없으면 당황해야 한다. 나의 행복을 나눌 수 있을 때라야만 둘일 수 있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란 말은 어쩌면 몹시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혼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둘이서도 행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