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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별헤는 방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 본 <피에타>의 주요 코드




<피에타>란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릎 위에 놓고 비통해 하는 마리아를 표현한 주제를 뜻하는 '자비를 베푸소서'란 의미의 이탈리아어다. 영화의 메인포스터에서 패러디 된 모티브이기도 하며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아마 가장 유명하지 않나 싶다. 출연 내내 집시 스타일의 아방가르드한 무채색 천조각을 걸치고 마치 피에타상을 패러디한 듯한 미선의 의상스타일과도 맞물린다. 모성을 모티브로 자본을 비판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을 양껏 담은 영화 피에타,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몇개 집어내어 보자. 영화보는 내내 리뷰쓸 거리가 머리 속에 줄줄줄 떠 다니던 영화는 실로 블랙스완 이후 아주 오랜만이다. 




#1. 몽정


영화는 휠체어 탄 상구의 자살씬이 블랙아웃으로 어두워지며 몽정하는 강도의 


침대에서 시작된다. 왜 하필 자위도 아닌 몽정인가? 남자들에게 몽정이란 제 2차 성징


이 시작되는 시기에나 하던 '내 의지 아닌 성욕의 해소'인 것이다. 본능적으로 자위


를 알게 된 성인남자들이 몽정으로 욕구를 해결하는 일이란 우스개소리 좀 보태면 그


야말로 굴욕 아닌가? 돈 몇백, 몇천에 사람 하나 불구로 만드는 것 따위 누워서 떡 


먹기인 강도에게 자위도 매춘도 강간도 아닌 몽정이란 코드를 씌운 점은 다분히 김기


덕 감독의 중요 코드로 해석된다. 즉, 그에게 본능과 욕구의 해소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인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자연스런 본능인 감정들이 그에게는 엄청난 짐과 소용돌이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짐승


채무자들을 하나씩 불구로 만들고 돌아오는 길이면 강도는 언제나 살아있는 동물을 


사서 손수 잡아 먹는다. 닭, 장어, 오리, 돼지, 종류는 아마 그의 기분에 따라 달라


지겠지. 짐승 같은 행위 후, 짐승을 손수 잡아 먹어치우는 행위는 마치 그의 잔혹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발버둥으로까지 비춰진다. 마치 사람 팔 하나, 다리 한 


쪽 병신 만드는 일 따위는 죽여 잡아 먹는 '먹고 사는' 인간의 살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3. 결핍


미선이 결정적으로 이용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에 관한 이야기, 결핍. 이는 몽정


의 코드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사랑, 모성, 애착에 관한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과 직결


되는 것이다. 강도가 채무자들에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기계에 팔을 넣어 돌리


고 몸까지 팔겠다는 여자를 내동댕이 쳐 가며 남편을 불구로 만드는 상식 밖의 잔혹


스러움은 결국 그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도, 누군가의 보호에 


눈물겨워 본 적도, 아무 것도 잃을 것 없는 강도에게 세상에 무서울 것이 무에 있


을까? 가져본 사람만이 박탈감도 느끼는 것이다.



#4. 모성


김기덕이 피에타에서 주요 코드로 선택한 사랑은 확연히 모성이다. <나쁜 남자>, <섬


>, <빈집> 등 그의 전작들이 대체로 남녀 간의 관계 중에서도 집착으로 귀결되었다면 


피에타는 훨씬 더 가족적인 것들에 초점이 가 있다. 채무자들의 주변인으로 나오는 사람


들 역시 주로 엄마, 특히 노모다. 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미선이 강도


에게 접근하는 방식, 미선의 등장 후 강도 심경의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아빠가 될 


음악했던 젊은 남자), 강도 모자에게 복수심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 등, 영화는 일관


되게 모성을 따라 이동한다. 그러나 감독은 미선을 통해 모성의 복합적인 코드를 아


주 교묘하게 잡아내고 있다. 필자가 2004년 <오로라공주>를 관람하고 당시 <분홍구


두>를 비롯한 영화의 주요 코드로 등장하던 모녀 관계에 대한 정신분석적 복합성을 신


랄하게 꼬집은 적 있는데 피에타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강도가 미선을 겁탈하려던 


장면, 미선이 강도의 몽정을 도와주던 장면에서의 양가 감정은 어쩌면 한국 사회 고질적


인 문제점인 가부장적 경직성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이기도 하다.



#5. 복수


박찬욱의 복수3부작을 비롯해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 이르기까지 복수란  


영화가 생겨난 이래, 장르불문, 플롯의 주요코드였다. 박찬욱의 복수3부작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과연 세상에 어떤 복수가 정당한가


?'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아주 직설적으로 악마의 모습을 만천


하에 공개한 채 이야기가 흘러간다. 피에타는 둘 다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


닌가 한다. 악하디 악한 가해자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좀 더 미묘하고 세련된 방식


으로 복수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마지막에 가서 찌부러뜨린다. 우리가 잔혹범죄 보도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결손가정에 대한 동정심을 양념처럼 뿌려 


놓았다. 



#6. 돈


여기서 돈이란 '자본주의'의 그것, 자본과 직결된다. 현재 피에타보다 살짝 일찍 개


봉한 <공모자들>의 주요코드이기도 하다. 두 영화는 모두 돈과 맞바꾸어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이다. 그 풀어내는 방식과 양적, 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결


국 신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재개발 되지 않은 청계천의 모습과 그 안에서 벌어


지는 사투, 밑바닥 삶에서 그 마저도 힘들어 생계자금을 빌렸으나 석달안에 열배로 


불어나 버린 이자, 돈과 등가교환되는 인간의 목숨, 불구가 되어 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그들의 적이 과연 강도 뿐인가? 적의는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결국 또 다른 파


괴를 낳는다. 누가 사회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가? 어찌하여 고군분투하는 양상


조차 밑바닥에서만 이루어지는가? 과연 사회적 양심이라는 게 우리에게 남았는가?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천민자본주의 부작용에 시달리는 북미와 개발과 복지 사


이의 균형이 깨져버려 줄줄이 파산 중인 유럽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논제일 것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 강도에게 불구를 당하고서도 그가 던진 만원짜리 몇 장에 비굴해


지는 인간의 모습이란 피튀기는 스릴러보다 훨씬 끔찍하기 짝이 없다. 세상에 돈이 


대체 뭐길래?


(이건 여담인데 2009년 경제 위기를 불러 일으킨 자본주의 시스템의 헛점과 오큐파이 


월스트릿 운동에 불을 붙인 2010년작 인사이드잡을 추천하는 바이다. 필자, 이 영화 


홍보는 개봉 이래 꾸준히 해 오고 있으나 아직도 안 본 사람들이 많더라)



#7. 악마 


개인적 취향의 차이일진 몰라도 필자에게 '악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 오


르는 것은 메피스토텔레스. 영혼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무섭게 


느껴졌던 건 비단 고교시절의 예민한 감성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영혼을 잃은 채 빈


껍데기로 살아가라'는 미선의 저주는 목숨을 앗아가고 신체를 불구로 만들던 강도보


다 어쩌면 훨씬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다. 그리하여 일찌기 <악마를 보았다>를 한등급 


아래 잔혹극으로 취급한 바 있다. 진정한 잔혹함이란 피와 내장이 튀어나오고 팔다리


가 잘리는 게 아니다. 인간 내면에 진정한 잔혹함이 있다.



#8. 그리고 희망


과연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필자의 여덟번째 키워드에 얼마만큼 동의할 수 있을까? 


절망 속에 아주 작은 희망을 보았다면 과연 그것이 과대해석이기만 한 것인까?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석을 하고는 싶지만 확실한 스포일러가 될 테니 여기서 생략하도록 하


자. 이후 궁금한 점은 댓글로 받겠다. 리뷰를 #7 까지로도 충분하다고 보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