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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별헤는 방

The Reader(2008) - 세 개의 창 달린 포크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배우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예뻐' 혹은 '잘 생겼어'와는 또다른 의미다. 특히 배우들이 그럴 때는 그 나이에 맞는 역과 세월이 무색하지 않을 연기력이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적합하지 않은 거다.

 

케이트 윈슬렛의 올겨울 개봉작들은 가히 놀랍다. 뭔가 흡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역의 평이하지 않은 두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낸 것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에이프릴과 더 리더의 한나. 전자를 먼저 보고 후자를 봤는데 전형적인 미국인을 연기하던 그녀는 독일스러운 영어 악센트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문맹이지만 왠지 이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한나역마저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만다.

 

물론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두 영화 중 더 리더로 올라가 있는데
둘 중 무엇이 되었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완벽한 후보라는 생각이다. 후보작들 중 'Frozen River'를 제외하고 모든 작품들을 섭렵했는데 안젤리나 졸리나 앤 해서웨이로는 비교조차 부끄럽고 메릴 스트립마저도 케이트 윈슬렛의 포쓰에는 gg일 뿐이다. 인터넷 투표에서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을 뿐더러 남주, 여주,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서 대부분 비평가와 인터넷투표가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일치하는 것이 바로 여우 주연상 후보의 케이트 윈슬렛이다.

 


 


2차 대전이 막 끝난 서독의 음습하고 우울한 잿빛 도시 속에 펼쳐지는 반 세기를 넘나드는 어느 남녀의 사랑 아닌 사랑이야기다. 제목의 The Reader는 바로 16세 소년 마이클로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여인 한나에게 묘한 이끌림을 느끼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한나는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그리고 사랑을 나눌 것(make love,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을 제의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홀연히 사라지고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듯 세월은 흘러 어느 새 그는 로스쿨에 다니는 대학생이 된다. 그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세미나 겸 참석했던 나치 전범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 피고 중 한명인 한나는 악명높은 아우슈비츠의 카포(감시인)였던 것이다.

 

 

--------------! (약간의 스포가 있음)

 

 

아마 영화 초반부에 눈치빠른 관객들은 알아차렸겠지만 그녀는 문맹이었던 것. 절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었던 그녀는 엄청난 형벌까지 감수하면서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긴다. 또 다시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그들을 갈라 놓는다. 마이클은 그녀를 위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테잎에 녹음을 하고 그것을 감옥으로 보낸다. 그 테잎들을 들으며 한나는 스스로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짧은 문장이나마 어색한 필체로 그에게 답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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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 이미 36이던 그녀는 호적에 피도 안 마른 마이클을 항상 KIDs라 불렀다. 벌써 반백의 노인이 된 그였지만 그녀에게 그는 여전히 꼬마일 뿐이다.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는 연민이야.
......(중략)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것 역시 통째로 전달되기 마련이지.
...........(중략)
그래서 일단 전반적으로 좋거나 싫어지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의 창을 더듬어 보게 돼.
손잡이를 쥔 손은 여전히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는거지.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 해.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누군가는 침을 뱉을 것이다.

남녀만 바뀌었을 뿐 원조교제와 다름없는 모양새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사랑이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사랑이야기라 쓰면서도 과연 이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은
분명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 그와 사랑을 나눈 그녀의 감정이 과연 호의였는지 욕정이었는지.
훗날 그가 정성스레 녹음하던 테잎들이 동정이었는지 연민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세 개의 창들 중 하나가 사랑이었는지 세 가지 모두가 통째 버무려져 사랑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고.

 

전쟁 후 분열된 독일의 혼란 속에 도덕과 법, 선과 악은 무엇이며 사랑은 또 무엇인지. 그 안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도 바로 일어서지 못할,마치 독일의 당시 상황처럼 혼란과 씁쓸함, 당혹스러움 속에 쭈뼛쭈뼛 극장문을 나서게 될 것이다.

 


 

 

한나는 놀라우리만치 솔직하고 단순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복잡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절대 이런 연기가 나올 수 없다. 그 솔직함과 당당함은 아우슈비츠의 카포가 한 파렴치한 만행들 마저도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끔 만들 정도다.

 

그녀에게 항상 자기 생각만 한다고 울부짖던 마이클을 모질게 쫓아버리던 싸늘함 속에 숨은 나약함과 여린 내면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이 영화는 만약 어설픈 배우가 한나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면 비평가들이 신나게 난도질하고 회쳐 먹기 좋을 만한 플롯과 모티브를 갖고 있다.  

 

그냥 영화를 보고 나면

아, 재미있어. 감동적이야.

가 아니라 그냥 영화가 통째로 가슴 속에 들어와 박히는 기분이다.

그 답답한 가슴을 어찌할 수가 없어 한동안을 숨막해 할 수 밖에 없는 먹먹함이 한동안 은근히 즐거운 괴롭힘을 주는 영화. 딱딱한 한나의 독일식 악센트와 약간은 깔보는 듯 키쯔(Kids)하는 소리가 한동안 머릿 속에 메아리치는 것도 후유중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작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여우주연상은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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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21:29

'이 시기 나의 낙은 아카데미 수상작들을 보고 수상작을 점치는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내 예상이 정확해서 놀라기도 했었다.
그만큼 낙이라곤 없었다.
삶의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했고
현실이 아닌 꿈과 환상, 비현실의 공간에서 나는 그것들을 찾아 방랑했었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영화를 한동안 멀리했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이사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느라
그랬다고 그 환경에다 변명거릴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그건 결국 내 현실에서 차지해야할 비현실의 비중이 줄었기 때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요즘 다시 영화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도피도, 현실에서 비현실의 비중이 줄었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사이,
내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깊은 이해의 폭과 인간을 대하는 넓은 사려가
다소 확장되었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비현실이 더욱 현실일 수 있고
그 어떤 비현실도 결국 지극히 사소하고 실재적인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것,
당신의 삶,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영화같은지를 너무나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사랑할 것이다.
내가 철저하게 혼자라 느끼는 순간조차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걸,
내가 얼마나 듬뿍듬뿍 왕창왕창 많이많이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받아왔는지
너무 '늦지 않게' '이제라도' 깨달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결코 잊지 않으려
끊임없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할 테니까.
내가 받은 사랑만큼, 그 이상을 돌려주기 위해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갈 테니까.

메콩강에 빠져 둥둥둥 떠내려 가면서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몇만배 힘들다는 걸 나는 이미 숨막히게 깨달았으니까.

나는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