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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별헤는 방

비몽 (2008) - 내가 그녀를 꿈꾸는가? 그녀가 나를 꿈꾸는가?


호접지몽(胡蝶之夢) - 내가 나비 꿈을 꾸었는가? 나비가 나를 꿈꾸었는가?

 

호접지몽에 대한 키워드를 떠올리면 영화 곳곳에 흩어진 메타포들을 좀 더 쉬이 주워 삼킬 수 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비몽 역시 갖가지 메타포들이 독특한 미쟝센과 얽혀 한점으로 구심된다. 동양적, 특히 한국적 정서나 사고방식을 매영화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구현하려는 감독의 의지가 비몽에서도 느껴지는데, 영화의 소재가 사랑이다 보니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소품들과 장면들이 넘쳐난다.

 

종로 뒷골목(아마 가회동으로 알고 있음)에서나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가옥과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진과 란의 집, 옛 연인의 집, 보광사 등 고대 한국의 배경 위에 현대적 색채를 덧씌운 느낌이다. 전각 새기는 남자와 전통 의상 만드는 여자의 직업에서도 알 수 있듯 동양적 색채와 美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흑백동색(黑白同色) - 검은 색과 흰색은 본디 같은 색이다.

 

이것은 비몽을 이해하기 위한 두번째 키워드로 어둠이 없으면 빛이 없고 빛이 사라져야 어둠이 잦아들듯, 물리적으로 명도가 극과 극인 두 색이 관념적으로 결국 하나임을 암시한다. 나비와 내가 하나라는 장자의 물아일체 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어둠과 빛

사랑과 증오

남과 여

나와 너

의식과 무의식

아니마와 아니무스

 

둘이지만 하나이며 하나일 수 없는 둘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진의 꿈은 란의 실제다.

진은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해 그녀를 꿈꾸고

란은 증오하는 옛연인을 몽유 상태로 찾아간다.

진은 그녀가 죽도록 보고 싶고 란은 죽어도 그를 보고 싶지 않다.

 

진이 愛라면 란은 憎이다.

애증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죽도록 사랑했던 만큼

실연 후 아픔의 크기 역시 꼭 그만큼이다.

진은 과연 헤어진 그녀가 보고 싶고 그립기만 할까?

란은 그 놈이 정말 죽이고 싶도록 밉기만 할까?

 

 

진이 잠들면 란은 깨어 있어야 하고 란이 잠들면 진은 잠들지 않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을 견뎌내어야 하는 둘에게 정신과의사(혹은 심리치료사로 여겨지는)는 둘이 사랑하는 게 어떠냐는 해결책을 넌지시 제시한다.

 


그리움에 슬픈 진과 자신에 대한 분노를 그에게 투사하는 란.

 

나는 이 미쟝센을 영화 전반부의 백미로 꼽는데 천의 빛깔이 두 사람의 감정을 대변하면서 어느 한 쪽이 확실히 보이면 다른 쪽은 불투명해지고 흐려지게끔 함으로써 관객에게 대칭적인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 배경 역시 계산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란의 뒤에는 화려한 옷감이, 진의 뒤에는 무미건조하고 질서정연하게 옷걸이에 걸린 무채색 옷들이 비춰진다.

 


사랑에 상처받지 않으려 이별을 먼저 말하고

이유도 모른 채 떠난 연인을 뒤쫓는 여자와 남자.

 

김기덕이 말하는 사랑법 중 가장 현실적이고 진실되지 않나 싶다.빈집이나 나쁜 남자의 비틀린 자화상보다는 누구나가 가진 사랑의 양면성을 말하고 있다.

 

둘 다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 뜬금없이 나타나는 갈대밭씬은

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대변한다.

 


먼저 진의 옛 여인과 란의 옛 남자가 사랑을 속삭이며 카섹스씬을 연출한다.

허나 그 장면이 그다지 감미롭거나 에로틱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남자의 행위는 욕설과 폭언을 섞여 짐짓 폭력으로 여겨질 만큼 과격하다.

둘의 언쟁은 점점 과격해지고 급기야 차에서 내려 다투기 시작한다.

남자는 소리치고 여자는 울부짖는다.

 


두 사람의 뒤로 진과 란이 나타나고 둘이 마치 옛연인들이 된것처럼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진은 여자와 란은 남자와 다투고

그 내용 역시 남자와 여자의 고민이었다가 진과 여자의 고민으로

또한 란과 남자의 고민으로 대상을 바꾸어가며 변모한다.

 


남자가 란이었다가 여자는 진이 되었다가,

혹은 서로의 연인들이 되었다가

네 사람이 서로 교차되며 대사를 하고 미쟝센을 떠돈다.

 

다시 남자와 여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뛰쳐가는 여자를 따라가는 란과 과격해진 남자를 말리는 진.

 

이때, 지금까지 검은색 옷만 입던 진은 마치 앙선생님이라도 된양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옷을 걸치고 있고

잠옷마저 흰색이던 란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나타난다.

 

이렇게 감독은 나같은 생각주의자들이 환장할 정도로 상반되는 이미지의 메타포들을 온통 흩뿌려 놓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것들만 주워먹어도 배가 터질 정도다. 연애로 점철된 나의 이십대와 인생은 결국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이란 나의 얼빠진 가치관에 걸맞게 나는 사랑의 자아찾기에 골몰하는 이 영화가 김기덕 영화 중에 유일하게 좋다 -_- ;

 


여자를 따라간 란은 슬픔에 주저앉은 여자를 어루만져 주며 가만히 신발을 신겨준다.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에 미숙한 남자에게 진은 손수 신발을 신겨준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자연과학 분야의 스테디셀러가 있다.

굳이 책 내용을 언급하지 않아도 진화론에 대한 배경지식만 있다면 제목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대충 짐작 가능하리라.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살아나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선택하여 우성인자를 만든다.

학문적 근거를 찾지 않더라도 우리네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녀가 보고 싶어 꿈에서조차 찾아나서는 진, 그가 싫어 꿈에서 볼까 두려운 란 -

하지만 정작 그들이 위로하고 싶은 건 고통스러운 자기자신이리라.

이별했을 때 우리는 어떠한가.

아픈 연인을 위로하기보다는 내 스스로를 싸안기 바쁘지 않았는가.

 


왜 하필 신발일까?

힐이 마치 운동화쯤 되는 양 뉴욕을 활보하던 섹스앤더시티의 그녀들.

영화 분홍신에서 슈즈홀릭으로 분한 김혜수.

2008년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 신상녀 서인영.

여자들은 왜 구두에 열광하는가?

그건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구두는 오직 나만을 위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빽이나 지갑, 옷과는 달리 구두는 설사 같은 사이즈라 한들 남의 신발은 이상하게 헐겁거나 불편하다.

갈대밭을 벗어나는데 외투 하나쯤 없어도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구두가 없다면 어떨까?

험한 길을 헤쳐나가기 위한 필수 아이템.

험한 길을 바꿀 순 없겠지만 맨발 대신 우리는 신발을 선택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신발을 신겨주며 진과 란은 비로서 진짜 self를 직면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shadow(상처)를 내 것으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self(진정한 자아)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서로 못 자게 하려고, 내가 먼저 자려고 다투던 그들이 이제는 자는 그녀의 이불을 덮어주고 잠이 들어서도 흐느끼는 그의 아픔을 느끼고 포근히 안아준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비극의 종착역일까? (다음 사진이 나올때까지 스포일러)

나의 상처를 직면하고 이제 이를 몰아내고저 하는 무의식적 진의 행위(꿈)는 이것을 의식 세계에서 행위할 수 밖에 없는 란을 현실세계의 불구로 만들고 만다.

극초반부에 정신과의사가 제안했듯, 한 사람인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해결책에 대한 감독의 진짜 답은 여기에 있다. 어쩐지 영화 시작부터 너무 명쾌하게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닌가 싶은 관객들의 허를 찌르듯 사랑해야만 하는 그들은 사랑하는 순간, 비극행 급행열차에 오르게 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

뭔가 힘들 결정 후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우리가 흔히 여행을 생각하듯 그들도 여행을 떠난다.

 

한옥집과 전각 새기는 남자, 옷(한복)짓는 여자에 걸맞게 \

사찰을 찾아 둘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영화에서 유일한 낮의 이미지다. 



이 영화는 기존 김기덕 영화에 비해

여성비하적이거나 불편하거나 찝찝하거나 잔인하지 않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절대적으로 없다는 건 아니다.

 

아름다운 미쟝센이 가득하던 영화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장면에선

두 주인공이 눈에 테이프를 붙이고 마치 먹깨비같은 표정으로 코믹스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영화 말미에서는 이제 사랑하는 란을 위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머리와 다리에 심한 자해를 가하는 피투성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얼마 전, 식욕과 관련된 책인 <배고픔의 자서전-아멜리노통, 2006>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이 있다.

배고프면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한다.

혹은 뭔가를 위해 어느 정도 참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잠은 어떤가?

졸리면 자야 한다. 잠을 못 잔 사람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굶기는 고문보다 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이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잔인한 고문관들이 수세기 전에 발명해낸 원초적 고문법이 아니던가.

 



절에서 갑자기 사라진 란을 기다리던 진에게 한밤중에 갑자기 나타난 란이 얘기한다.

 

"나비를 따라 갔었어요."

 

그리고 둘은 키스한다.

잠든 란의 손에 조용히 수갑을 채우지만 이미 비극은 시작된다.

 

 

 

누가 죽였느냐, 왜 죽였느냐 취조하는 형사 앞에서 란은 슬며시 웃는다.

마치 이젠 모든 걸 알겠다는 듯 ..

 

결국 하나일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은 서로를 구속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사랑의 시작은 결국 불행의 시작이고 사랑의 끝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다.

왜 감독이 굳이 그러한 결말을 선택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자는 거랑 죽는 건 달라요."

"사랑해요 .. 잘 가요 .. "

 

란이 인사하는 대상은 그인가? 자신인가?

나비는 장자이고 장자가 곧 나비이며, 란은 진이고 진은 란이다.

란의 인사는 나비가 되어 진에게 내려앉고

둘은 비로서 '진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눈물 흘릴 틈도 없이 머릿 속은 혼란스러웠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사랑에 관한 한 진실이 있기나 하던가?

나의 진실이 그에게 거짓이 되고 그의 진심이 내게는 상처가 된다.

 

'나(self, ego)'의 존재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양립할 수 있는가?

나는 타인이 되고 타인은 내가 되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표현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사랑에는 희생이 필수라지만 우리는 과연 자신을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나를 완전히 죽이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내 상처를 덮어둔 채 타인의 상처를 그러안을 수 있는가?

 

 

나는 심리학을 전공(엄밀히 말하면 복수전공+매스터하려다 때려침이지만)했고
 
여전히 힘들면 정신분석 서적을 뒤적거리지만

이 영화는 의식, 무의식, 융,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따위를 전혀 모른다고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아주 간단히 해설될 수 있다.

 

사랑을 고민한 적 있고 이별에 아파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칭적인 메타포가 상징하는 수십가지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만큼 김기덕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해안선을 본 후의 더러움, 나쁜 남자를 본 후의 치욕,

빈집을 본 후의 괴기스러움 
대신 사랑에 대한 아련함이 자리잡는다.

 

한동한 멍하게 나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사람의 잔상들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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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01- 10  23:32 에 비몽을 두번 연달아 보고 썼던 글..

블로그 서비스 제공자가 달라 퍼다 날랐더니 살짝 핀트가 안 맞는 부분이 있는데
내용 파악에는 별 지장이 없으니 수정없이 두련다.

2009년은 내게 가혹한 겨울이었다.
마음은 황량했고 심장은 얼어붙었고 내 청춘의 시간들은 얼음과 함께 굳어갔다.
그 아프던 해를 보내고 벌써 1년이 넘게 지났다.
난 이미 조금 무뎌진 것 같다.
그렇게 굳게 다신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실수들을 또 할지도 모른다는,
혹은 이미 해버린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걸까?
요즘의 나는 조금 많이 넋이 나간듯 하다.

이 리뷰를 다시 읽으며, 옛 글들을 다시 읽으면 ..
학문적 가부를 떠나 저 시기의 내가 어디에 집중해 있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과거의 글이 부끄럽다고 수정하는 것도 뭔가 자기기만 같고
그때, 과거의 나는 아직 덜 자랐으니 더 모르고 더 배워야 할 것도 더 많았을 테지.
또한 그만큼 순수했을 거란 위안도 해 본다.

항상 현실을 사는 내가 과거를 돌아볼 때는 분명 현재에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예전을 잘못을 돌이키고 반성하기 위함인데 지금의 내가 조금 그런 것 같다.

마음을 좀 더 다스리고 바로 설 필요가 있다.
회사 근처 비크람 말고 명상 있는 요가원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힘드네..

지금 이 순간 근무시간에 딴짓해서 사장님께 넘흐 죄송하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