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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갈등이 생기고 불의의 사고로 여자가 죽는다.
- 이것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줄거리다.
말 그대로 별.것.없.다.
하지만 평범한 스토리 속의 미치도록 섬세한 디테일이야말로 진짜 이 영화의 스토리.
이 영화가 후벼파는 진실 앞에 나설 용기가 없어 슬그머니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전부 이렇게 사는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비겁하게 용기만 얻어간다.
삶의 모순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꼬집는 영화를 나는 또 보았던가?
있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그 자리에 새로이 들어서리라.
배우의 꿈을 좇는 에이프릴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프랭크는 우연히 펍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재능없는 배우였고 그녀를 위로해 주려던 프랭크와 결국 말다툼을 한다. 좀 긴 듯 한 오프닝이 지나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사랑 이후부터 진행된다.
연인들의 다툼이라는 게 항상 그런 식이다. 사랑의 위로를 상대방은 오해로 소화한다.
정작 필요한 건 침묵인데 어설픈 위로로 그(녀)를 더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고. 결국 상대와 나는 정녕 하나일 수 없고 '내'가 될 수 없기에 인간은 항상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결혼한 그들은 전혀 혁명(revolution)적이지 않은, 너무나 평화롭기만 한 아담한 집들이 모인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동네인 revolutionary road에 둥지를 꾸린다.
길위의 영혼처럼 자유롭던 프랭크는 평범한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지친 중년 남성이 되어 가고 아이 둘의 육아에 지친 에이프릴에게 배우란 어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얘기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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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혁명을 일으킨다.
파리로 떠나자. 당신은 정말 당신 자신을 찾고 돈은 내가 벌어서 생활하는 거야.
파리는 단순히 프랑스의 수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예술의 도시, 자유의 도시, 적당히 퇴폐적이고 生이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 ..
파리지엔이란 단어가 주는 그 뉘앙스를 고스란히 떠 올려보자.
게다가 지금은 60년대다. 프랭크에게 파리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곳이었고 연애할 때 꿈꾸듯 말하던 프랭크를 떠올린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파리로 가자고 한다.
그즈음-물론 지금도- 지긋지긋한 이 곳을 떠나 파리에서 1년만 살다 오고 싶다는 내 꿈이 오버랩 되었다. 감독이 왜 하필 파리로 떠나자고 했는지는 굳이 그 곳에 가 본 적 없더라도 프랑스 영화에 미쳐본 적 있거나 노통브나 흠뻑 빠져 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파리에 살지 않는 누군가에게 '파리'는 그 자체로 환상일 수 있음을 ..
두 아이가 있고 파리에 직장도 없는 그들의 계획을 모두들 축하하지만 사실 '웃기고 있네'라며 비웃고 뒷담화한다. 그들이 친한 이웃집 부부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돌아간 후 이웃집 부부 중 아내가 남편과 그에 대해 대화하다 갑자기 눈물 흘리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영화가 말하는 바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월급쟁이들 삶이 그렇듯 월급 들어오는 날을 보며 한 달을 살고 적당히 상사 눈치도 보고 (보편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실제로 많이 일어나는) 여직원과 바람도 피고 프랭크는 진정한-_-세일즈맨의 삶을 산다. 장난섞어 올린 보고서가 우연히 대박을 치고 파리의 꿈이 무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들에게 집을 소개시켜 주며 집과 부부 모두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중개인 노부인은 똑똑하지만 불운하게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남들에게 비정상인 그만이 유일하게 그들의 파리행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축하해 준다.
그러던 중 에이프릴은 임신사실을 알게 되고 프랭크의 승진과 겹치며 이들 부부의 파리행은 난항을 겪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관계의 변질, 꿈과 이상, 에이프릴의 난해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모순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에이프릴은 정말 단순하다. 네이버 평점 따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다. 다른 누군가는 내가 본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지. 예상대로 높은 평점과 최저 평점의 극과 극을 달리는데 10점 만점에 10점을 준 사람들조차도 단순히 사랑, 관계, 결혼의 변질 등에만 비추어 영화를 해석했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이 영화는 '삶' 그 자체다.
그냥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 왜 사냐?'고 확 물어보고는 뜨끔해 할 사이도 없이 '걍 그렇게 살거니?'라며 일침을 가한다. '어쩌지?'하며 허둥지둥 답을 찾는 사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검은 화면 위로 결국 '파리'에 갈 혁명을 일으키지도, 떠나지도 못 하고 다시 우연한 행운이나 기다리고 불평하며 현실에 안주할 것임을 피식 웃으며 돌아서는 샘 멘데스의 얼굴이 보이는 듯 하다. 꿈과 이상(에이프를)은 결국 현실(프랭크) 앞에 좌절될 수 밖에 없고 좌절된 꿈은 결국 쓸모없기에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처음엔 프랭크도 꿈꾸던 영혼이었음을 .. 부유하던 길 위의 영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독의 비웃음은 여전히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남은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대화에서 정점에 닿한다. 굳이 아메리칸 뷰티와의 연장선에서 미국이 어쩌고 해석하지는 않겠다. 6~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의 삶과도 다를 것이 없기에 ..
내가 감탄해 마지않던 장면은 후반부에 부부가 죽도록 싸우고 난 다음 날, 말없이 평소처럼 아침식사를 차리는 에이프릴의 얼굴 위로 쏟아지던 아침 햇살. 폭풍전야와도 같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장면은 이후의 파국에 숨막힐 듯한 복선을 드리운다. 난 왜 이런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내 가슴을 아리게 할 명장면이다.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위대한 씬이다 진정. 굳이 말로 설명하는 게 우스우니 직접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영화 오프닝과 이웃집 부부와의 식사 등 영화 곳곳에서 흘러나오던 60년대 스윙 재즈와 감미로운 연주의 향연은 부가적인 즐거움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의 캐스팅부터가 모순이다.
타이타닉에서 세상 둘도 없을 안타까운 사랑을 나누던 두 남녀는 결국 남자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레볼루셔너리로드에서는 사랑의 정점에서 하강 곡선을 그리다 ............
(더 이상 쓰면 스포일러라서 여기서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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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순수한 포스터와는 달리 잔잔한 스토리 속 묘한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놓아주지 않는다. 포스터를 저렇게 만든 것도 감독의 의도였을까? 포스터 속 색상이나 주인공의 애틋한 포즈들과도 완전 대치되는 영화인 것을 ..
관계의 변질
사랑의 모순
결혼의 이면
일상과 비일상
정상과 비정상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生의 모순에 가해지는 끝없는 조소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마치 내 자신의 꿈의 좌절된 것과 같은 쓰라림에
주제 사라마구가 눈 먼자들의 도시에서 제시한 긍정을 눈 뜬자들의 도시에서
가열차게 내동댕이 쳐 지는 것을 보았을 때와 같은 그 씁쓸함에
한참을 어둠 속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음을
나도 모르게 언더락 한잔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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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0 22:46
새벽녘에 이 글을 쓰고 위스키 한 잔을 들이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덕분에 나는 지금 生의 모든 순간에 감사할 줄 알게 된 거겠지
내일 죽을 것처럼, 항상 오늘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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