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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사색의 방

동화거꾸로보기2) Snow White







백설공주 


얼마 전에 모시인이 백설공주 다시 쓴 건 없냐고 물었었는데 완성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서야 간결(?)하게 완성해 본다. 단지 백설이 설정을 비행청소녀에서 자폐소녀로 조금 바꾸었달까. 간단하게 썼지만 정신분석 코드가 꽤나 숨어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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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날에 백설공주가 살았습니다. 눈처럼 희다하여 백설이라 이름 붙여진 소녀는, 가엾게도 그녀를 낳으며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빠는 재혼을 하여 새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엄마의 정이 선천적으로 그리웠던 그녀는 언제나 침울한 소녀로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녀를 걱정했던 새엄마는 자신의 자식도 낳지 않은 채 지극 정성으로 백설이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에 피곤하여 무심한 아버지탓에 영아기 적절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백설이는 새엄마의 사랑에 제대로 답하는 법도 몰랐답니다. 언제나 방 안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공상 속 세계에서 지냈습니다. 자폐에 가까운 백설이의 은둔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마음 여린 새엄마는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때론 거울이 대답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할 정도로 아픈 마음을 숨기며 여러 날을 살았습니다. 


어느 덧 백설이도 열 여섯이 되고 초경을 시작하며 2차 성징이 시작되자 새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앉아 여자가 되는 것에 대해 성교육을 합니다.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 줄 모른 채 살아온 백설에게 사랑이란 생소하기만 하였습니다. 백설이는 초경의 피를 보고 엄마를 떠 올렸으며 여자가 된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공주였던 그녀에게는 유모를 비롯한 여러 명의 가정교사가 있었는데 언제나 그림, 음악, 문학 수업 같은 정적 활동만 좋아하던 그녀가 새엄마에게 처음으로 부탁을 합니다. 사냥을 배우고 싶다고 말이죠. 새엄마는 백설이의 첫 부탁에 기쁜 마음으로 훌륭한 선생 하나를 소개시켜 줍니다. 


사냥에는 승마가 필수였고 처음으로 신나게 말을 타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백설이는 그야말로 이루 말 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백설에게 승마와 사냥을 가르쳐 주던 선생은 멋드러진 턱수염에 늠름한 어깨를 가진 잘생긴 청년이었으니까요. 그가 말을 태우고 잡아줄 때마다 그녀는 처음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게 됩니다. 눈처럼 하얗던 볼에는 빠알간 홍조가 매화처럼 피어났죠. 멋진 용모덕에 여성 편력마저 있던 사냥 선생이 그녀의 마음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승마와 사냥 수업을 핑계로 야외와 숲으로 다닐 일이 많던 그들은 어느 날, 한적한 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게 됩니다.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그녀의 이마를 더욱 빚나게 했고 땀에 젖은 그의 셔츠에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낍니다. 이미 그녀의 마음을 빼앗은 그는 급긱야 입을 맞추고 몸을 탐하게 됩니다. 백설은 다시금 아래에서 나오는 피를 보고 혼란에 빠져 공황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이건 월경도 아니었으니까요. 흐느끼던 그녀를 보고 당황한 사냥꾼은 그녀를 그 자리에 남겨두고 도망쳐 버립니다. 옷을 채 갖추어 입지도 않은 채 울고 있던 아름다운 백설을 발견한 건 숨어사는 곱추였습니다. 선천성척추측만증으로 1m남짓 밖에 자라지 못한 그는 마을 사람들의 놀림과 비웃음을 피해 산 속에서 같은 처지의 소년과 청년들을 돌보며 함께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지속된 공황 발작으로 실신 직전이었던 그녀를 난쟁이는 함께 살던 청년들을 불러 힘겹게 집으로 옮겼습니다. 난쟁이들의 지극한 정성 덕택에 삼일만에 깨어난 그녀는 자기 방, 상상 속에서나 살았던 곱추등이들을 보며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게다가 값비싼 음식들로만 차려지던 궁궐에서는 보지 못한 단촐하고 소박한 음식들과 가구들이 내성적이고 공상하길 좋아했던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았답니다.


버섯처럼 생긴 작은 집에 살며 문 밖을 나가 나무 아래 그늘에서 노래를 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했습니다. 배고프면 나무 아래 사과를 따 먹고 난쟁이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밭일과 고기잡이가 끝나고 돌아올 시간이 되면 그녀는 밥을 지었습니다. 한편 일종의 공동체를 꾸려 살던 난쟁이들은 원탁회의를 하게 됩니다. 결혼이나 연애라곤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추한 모습의 그들 앞에 천사같은 여자 하나가 나타났으니 잔잔한 호수 표면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같은 일이었던 거지요. 게다가 처음 그녀를 발견한 대장 난쟁이는 이미 그녀가 처녀를 잃어버렸음을 어림짐작 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백설은 하나님 이상의 구원같은 존재였습니다. 세상에 신이 있어 백설이란 천사를 보내 주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모닝 발기를 자위만으로 해결하던 그들에게 그녀는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석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즈음 왕국에서는 사라진 백설이 때문에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지요. 사냥 선생은 공개수배되고 백설을 찾는 자에겐 그녀와의 결혼과 함께 평생 먹고 살아도 될만한 성과 상금을 주겠다는 방이 방방곡곡 붙여집니다. 공짜 재산을 노린 전국의 놈팽이란 놈팽이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왕은 토너먼트를 벌여 10명 정도의 추적자를 선발하게 됩니다. 사실 뭐, 이미 백설 공주에 대한 소문이란 예쁘긴 하지만 조용한 백치미의 파리한 소녀로 알려져 있었으니 딱히 그녀를 갈망하는 것도 아니었겠지요. 그녀를 찾았을 때 따라오는 돈, 그 돈에 다들 욕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어차피 돈만 있으면 여자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의복을 보면 아시겠지만 당시는 한껏 부풀린 풍만한 가슴에 콜셋으로 조인 잘록한 허리를 가진 풍만하고 섹시한 여자들이 대세였습니다. 


백설이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생활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그런 소녀였습니다. 일곱난쟁이와 그녀의 삶을 시로 쓰기도 하고 노래 부르기도 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었습니다. 게다가 일곱이들의 원탁회의 결과, 그들은 일주일동안 월화수목금토일 차례를 정해 동등하게 공유하기로 하였고 그녀가 월경을 할 때면 한주를 고스란히 그녀만의 시간으로 내어 주어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 졌습니다. 일곱이들과 전원생활에 몸과 마음이 한껏 풍요로워진 그녀는 섹스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는 일이 남녀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외모만 번드르르한 남자가 얼마나 쓸모없고 허세뿐인지를 그녀는 깨닫고야 말았던 거지요. 그녀는 난쟁이들의 의견에 합의를 합니다. 그러나 단, 그녀의 의견이 우선이고 어느 요일이건 그녀가 월경을 하지 않더라도 혼자 있고 싶은 날엔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난쟁이와 백설은 최종안에 합의를 하고 백설을 사이에 둔 이른바 일처다부제 생활이 시작됩니다. 


어차피 돈이라는 불순한 동기로 그녀를 찾는데 동참한 남자들은 탐사 초기, 그들끼리의 싸움으로 벌써 셋이나 죽어 나갑니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물과 음식은 떨어지고 숲의 척박함 속에 처음 만난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처치하려 들기 시작합니다. 이미 몇몇은 벌써 포기한 채 어디선가 낙오되어 버렸고요. 한편, 탐사대를 보내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새엄마는 믿을만한 유모를 변장시켜 탐사대를 추적하게 합니다. 그들의 찌질함과 잔인함에 치를 떤 유모는 백설의 위험을 감지하고 이를 악물고 백설을 먼저 찾겠다 다짐합니다. 젖먹이 때부터 백설을 키워온 그녀에게는 백설의 자폐성도, 새엄마의 슬픔도 모두 짠하기만 합니다. 아아, 그녀의 정성에 탄복했던 걸까요? 혹은 백설의 성향을 그래도 가장 잘 아는 그녀를 발걸음이 자연스레 이끌어 준 걸까요? 처음 곱사등이들의 외모에 놀랐던 그녀는 백설의 얼굴에서 여지껏 볼수 없었던 함박 웃음을 보곤  성급하게 나서는 대신 잠자코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발견한 자그마한 솔방울로 목걸이를 만들어 사과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백설이 혼자 있는 버섯 집의 문을 두드립니다. 처음 보는 외지인에 백설은 다소 놀랐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얼굴을 검은 천으로 두른, 목소리에서부터 지쳐버린 피곤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파에게 선뜻 차와 식사를 대접합니다. 백설의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네는 일찌기 본 적 없던 백설의 모습에 유모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유모의 눈물을 닦아 주려다 백설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고 둘은 격한 포옹을 하며 그간의 회포를 풉니다. 백설의 결심은 단호했지요.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행복하기에 다시 성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리하여 유모는 굳은 결심을 하지요. 돌아가서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백설을 여기 두고 가겠다고. 백설이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 가겠다고.


탐사대에서 결국 마지막 하나 남은 남자만이 드디어 그들의 집을 발견합니다. 이미 허기와 목마름에 지친 그는 문을 두드리며 집 앞에 쓰러지고 이미 그들의 포악함을 경험한 유모는 돌아온 난쟁이들과 백설과 힘을 합쳐 그를 죽이고 생매장해 버립니다. 다시 평화를 찾은 버섯집과 여덟명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에필로그 -



아직 젊고 풍부한 상상력에 감수성이 남달랐던 백설이는 산 넘어 자기네 왕국의 반대편 나라에서 노래를 하고 시를 읊어 버스킹으로 돈도 벌고 그 돈으로 생필품도 사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곱 난쟁이들의 아이를 낳기 시작하자 마을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고 자식들의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아 작은 버섯집 주변 숲은 엄연히 작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정부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꾸려가며 오래오래 계속 행복하게 살았습니다.